
기후 위기 이후 사회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질문에 도달한다. 중산층은 붕괴되고, 하층 계층은 고착된다면 과연 계층 이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과거 산업 사회에서 계층 이동은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가능하다는 믿음이 강하게 작동해 왔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믿음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계층 이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식과 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기후 위기 이전과 이후, 계층 이동의 조건이 달라진 이유
기후 위기 이전의 계층 이동은 비교적 명확한 경로를 가지고 있었다. 교육을 통한 상향 이동, 안정적인 직장 진입, 자산 축적은 개인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이 경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보상이 커진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이후에는 이 전제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교육을 받아도 산업 구조 변화로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자산 역시 기후 리스크와 정책 변화에 따라 가치가 급변한다. 시간은 더 이상 자동으로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특히 기후 위기는 계층 이동에 필요한 ‘여유’를 제거한다. 이동을 위해 필요한 학습, 전환, 실패의 경험은 모두 시간과 자원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위기 상황이 반복될수록 개인은 생존 유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이로 인해 계층 이동은 더 이상 대중적인 경로가 아니라, 제한된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계층 이동 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이 어려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동을 가능하게 하던 사회적 장치들이 동시에 약화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과거에는 교육과 고용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연결되었고, 그 연결 자체가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이후 이 사다리는 여러 구간에서 끊어지고 있다. 특히 기후 리스크는 계층 이동의 시간적 여유를 앗아간다. 이전에는 몇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전환을 시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위기가 반복되면서 장기 계획 자체가 중간에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이동의 실패 확률을 높이고, 실패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기후 위기는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개인에게 집중시킨다. 실패했을 때 돌아갈 수 있는 안전망이 약해지면서, 계층 이동은 점점 더 ‘위험한 도전’으로 인식된다. 이 인식 변화 자체가 이동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계층 이동
계층 이동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그 형태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기후 위기 시대의 계층 이동은 과거처럼 ‘위로 올라가는 이동’보다 ‘위치를 바꾸는 이동’에 가깝다. 새로운 이동은 단일 직업이나 자산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역할 이동, 지역 이동, 생활 방식 전환을 통해 계층적 위치를 재조정한다. 이는 단기적인 소득 상승보다,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산업에 종속된 커리어에서 벗어나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거나, 고비용 도시 중심 생활에서 벗어나 리스크가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선택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계층 상승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에는 ‘얼마나 위로 갔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즉, 새로운 계층 이동은 상승이 아니라 재배치에 가깝다. 새로운 형태의 계층 이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과거처럼 명확한 소득 상승이나 지위 변화를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생활의 안정성, 회복력, 선택 가능성이 조금씩 달라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이동은 종종 ‘후퇴처럼 보이는 선택’을 포함한다. 더 낮은 소득, 더 작은 주거, 더 느린 성장 경로를 선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는 방향이다. 이는 단기적 계층 상승보다 장기적 생존 가능성을 중시하는 이동이다. 또한 새로운 계층 이동은 개인 단독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지역·네트워크·역할 단위로 발생한다. 개인이 혼자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위치를 바꾸거나 역할을 재배치함으로써 계층적 위험을 낮춘다. 이러한 이동은 통계나 지표에 잘 잡히지 않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는 가장 현실적인 이동 방식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람들의 공통 조건
그렇다면 기후 위기 시대에도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을까. 가장 중요한 공통 조건은 완충 장치의 존재다. 완충 장치란 자산의 크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정 기간 소득이 줄어들어도 버틸 수 있는 구조, 실패 이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경로, 위기 상황에서 연결될 수 있는 관계망이 모두 포함된다. 또한 이들은 계층 이동을 하나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대신 상황에 따라 위치를 조정하고, 위험을 분산시키는 선택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계층은 고정된 신분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상태로 인식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조건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육, 주거, 고용, 복지 제도가 이동과 전환을 허용할 때만 계층 이동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된다. 결국 기후 위기 시대의 계층 이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훨씬 어려워지고 제한된 형태로 변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개인의 노력과 사회 구조가 동시에 작동할 때만 열릴 수 있다. 기후 위기는 계층 이동의 환상을 걷어내고, 계층 이동의 진짜 조건을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은 충분하지 않다. 대신 어떤 구조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지가 계층 이동의 핵심 질문이 된다.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람들의 공통 조건은 능력보다 구조에 가깝다. 이들은 이동을 시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를 갖고 있으며, 실패했을 때 완전히 추락하지 않을 안전망을 확보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여유가 반드시 큰 자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 기간의 소득 공백을 버틸 수 있는 구조, 다른 역할로 이동할 수 있는 경험, 위기 상황에서 연결될 수 있는 관계망이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이들은 계층 이동을 ‘한 번의 도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조정과 재배치를 반복하면서,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는 성공 확률을 높이기보다는 실패 비용을 낮추는 전략에 가깝다. 결국 기후 위기 시대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개인의 의지보다, 이동을 허용하는 사회적 구조와 개인이 그 구조에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