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위기는 복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의 복지 시스템이 주로 소득 부족이나 실업 같은 개별 위험에 대응해 왔다면, 기후 위기 시대의 복지는 반복적이고 연쇄적인 충격에 대응해야 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복지의 범위를 넓히는 문제이기보다, 복지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문제에 가깝다. 이 글은 기후 위기 시대에 복지 시스템이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기후 위기 시대, 기존 복지 시스템이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
기존 복지 시스템은 비교적 명확한 위험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실업, 질병, 노령처럼 발생 시점과 대상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위험이 중심이었다. 이 구조에서는 사후 지원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의 위험은 다르다. 폭염, 홍수, 에너지 가격 급등, 주거 불안은 특정 집단에만 발생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사회 전반을 흔든다. 피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누적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존 복지의 ‘사후 보전’ 방식이 한계를 드러낸다. 문제가 발생한 뒤 지원하는 방식만으로는 회복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복지 비용은 누적된다. 또한 고용 기반 복지의 한계도 분명해진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비정형 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용 형태에 따라 보호 수준이 갈리는 구조는 더 많은 사각지대를 만든다. 결국 기후 위기 시대에는 기존 복지 시스템이 전제로 삼았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기존 복지 시스템의 또 다른 한계는 위험을 개별 사건으로 취급해 왔다는 점이다. 실업이나 질병은 특정 시점에 발생하고, 일정 기간 이후 회복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의 위험은 종료 시점이 불분명하며, 회복 이전에 다음 위험이 겹쳐 발생한다. 이러한 누적 위험 환경에서는 한 번의 지원으로 상황이 정상화되기 어렵다. 지원 이후에도 에너지 비용 상승, 주거 불안, 건강 악화가 반복되며 개인의 상태는 점점 더 취약해진다. 기존 복지는 이 반복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구조다. 또한 행정 체계 역시 문제를 드러낸다. 사후 확인과 심사를 전제로 한 복지 집행 방식은 긴급성과 속도가 중요한 기후 재난 상황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지원이 필요한 시점과 실제 지원이 이루어지는 시점 사이에 큰 공백이 발생한다. 결국 기존 복지 시스템의 한계는 재정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새롭게 요구되는 복지 시스템의 방향
기후 위기 시대의 복지는 단순한 소득 이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회복력을 높이는 장치로 재정의된다. 이는 ‘누가 얼마나 받는가’보다 ‘얼마나 빨리 다시 설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첫 번째 방향은 예방과 완충 중심의 복지다. 재난이 발생한 이후의 지원보다, 피해를 줄이고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가 중요해진다. 주거 안정, 에너지 접근성, 기본 의료는 복지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한다. 두 번째는 고용 형태와 무관한 보편성이다. 정규직 여부, 계약 형태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복지 시스템은 기후 위기 시대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위험이 모든 사람에게 확산되는 만큼, 보호 역시 넓게 설계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이동과 전환을 지원하는 복지다. 산업과 지역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이동과 재학습을 지원하지 않으면, 전환 비용은 특정 계층에 집중된다. 복지는 정체를 유지하는 장치가 아니라, 안전한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은 복지를 비용이 아닌 사회 유지 비용으로 재인식하게 만든다. 새로운 복지 시스템의 방향에서 핵심은 속도와 접근성이다. 기후 위기 상황에서는 복지가 늦게 작동할수록 효과는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사전 등록, 자동 지급, 조건 완화와 같은 방식이 점점 중요해진다. 또한 복지는 단일 제도가 아니라, 여러 영역이 연결된 구조로 작동해야 한다. 주거 지원, 에너지 지원, 의료 서비스, 소득 보전이 분절되어 있을 경우, 개인은 복잡한 절차 속에서 필요한 도움을 놓치기 쉽다. 기후 위기 시대의 복지는 개인을 특정 상태로 고정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는 지원 수준을 늘리는 문제보다, 지원 방식을 재설계하는 문제에 가깝다. 이러한 복지 방향은 단기적 보호뿐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 회복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기후 위기 시대, 복지 재설계가 사회에 미치는 장기적 변화
복지 시스템이 재설계되면 사회의 대응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개인은 모든 위험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노동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환이 가능한 복지 구조는 개인이 위험한 선택을 무조건 회피하지 않도록 돕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적응 능력을 높인다. 또한 복지 재설계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위기 비용이 특정 집단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을 때, 기후 대응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유지되기 쉬워진다. 물론 복지 재설계에는 재정 부담과 정치적 갈등이 따른다. 그러나 이를 회피할 경우, 비용은 더 불안정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복지를 줄이는 선택이 가장 비싼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기후 위기 시대의 복지 시스템은 사회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기후 위기는 복지를 더 크게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를 더 정교하게, 더 현실적으로 다시 설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복지 재설계의 장기적 효과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보다,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본적인 안전망이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개인과 기업이 극단적인 위험 회피에 몰두하지 않게 된다. 이는 경제 활동의 위축을 막고, 사회 전반의 적응 능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실패를 곧바로 생존 위기로 연결 짓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역할을 학습할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복지 재설계는 세대 간 갈등 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후 위기의 비용과 부담이 특정 세대에 집중되지 않을 때, 사회적 신뢰는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후 위기 시대의 복지는 분배 정책이 아니라 사회 유지 전략에 가깝다. 복지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분열되기 때문이다.